2010년 12월 4일 토요일

단상에 오르는 것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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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상의 권위는 수상작이 대변한다. 심사단의 자질이 아무 문제 아니라는 것이 아니나, 그 자질 또한 수상작이 말해준다. 혹은 그래야 모양이 좋다. 수상작 수준이 개차반인데 상의 권위를 말하는 것이 가능한가? 심사위원 개개인이 잘나고 멋진 사람들이라서 그 상이 멋져지는 게 가능한가? 개차반인 수상작을 두고 쓴 멋진 심사평이란 것은 가능한가?

작품이 엉망이면 상도 심사단도 심사평도 마침내 희극적 장면의 익살꾼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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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자가 아니란 이유로 쿤데라를 의심해본 적이 단한번도 없듯이, 그 반대로, 무슨무슨 상 수상작이라고 해서 작품수준에 대한 의심이 말소되는 경우도 단한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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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문씨를 떠올린다. <바셀린 붓다>가 동인문학상 후보로, 결코, 전혀, 절대로 선정하지 않을 것이면서도, 후보로 올려놓은 것에 불쾌감을 느꼈다고 하는 점이나, 한국 문학상은 받고싶은 상이 하나도 없다고 하는 점에서, 지난 십여년 동안 켜켜한 그의 피곤과 피로를 느낀다. 분명 피곤한 일이다.


짜증은 말하고 싶지도 않다, 짜증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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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어나벨>이 받아보니 보이스피싱이더란 말을 수상작가 및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휘장을 걷어내고 말할자 누구인가. 누가 그 피곤과 피로를 이겨내고, 짜증내지도 지치지도 않고 말하며, 단상의 광채에 눈멀지 않고 존재해줄 것인가.



2010년 12월 2일 목요일

낮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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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배운 것들의 구할팔푼이 쓸모가 없다는 것, 어쩌면 가나다라 떼고 안넘어지게 걷는 법 잘 배웠으면 그 다음은 학교에 기대할 것도 실망할 것도 별반 없다는 것, 이런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학교 담장을 넘어나오기가 두려워지는 것은 무엇이냐. 쓸모없는 것을 붙들고 그것만 쳐다보느라 귀닫고 눈 어두울 적의 그 깜깜하고 갑갑한 느낌이 좋기도 하다면, 이게 그저 매저키스트의 궁색한 푸념만은 아닐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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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낭비를 견뎌내는 것이 업, 숙명, 팔자, 그런 류도 있을 것 같다는 말로, 또다시 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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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업을 이어가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하거니와 늘상 저 방구석의 깜깜하고 갑갑한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고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불쑥불쑥 열두번 곱하기 열두번으로 드는데,


퇴근하고 그토록 원하던 깜깜한 방에 도착하면 꾸벅꾸벅 졸고 앉았는 상태에는 복장이 터져 팔짝팔짝 뛸 판이다. 그럼에도 쏟아지는 졸음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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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 길들여진다는 것은 밤을 그리워하며 낮을 버티다가 정작 밤을 맞으면 낮의 피로를 견디지 못하여 잠이나 자는 날들, 그 실망에 무두질 당하는 것이다. 희망의 각질제거에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