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2일 일요일

생활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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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인가, 한나라당 이진삼 의원이 군 수뇌부들에게 군기강 해이를 지적하겠다며 군번줄, 부동자세, 거수경례 자세 등을 문제삼아 사자후로 일갈하는 영상을 봤다.

일병만 지나도 모욕이 될 저런 말을 소리소리 지르고 있는 장면을 보고 '통쾌하다!'는 수많은 웹상의 반응들에 나는 엷고도 짙은 공포를 느낀다. 이건 생활 공포다.
잘못한 사람은 어떤 모욕을 당해도 상관없다는 것일지.
천안함 침몰에 대한 진상을 밝히는 데에도, 정당하게 책임을 묻는 데에도 어떤 도움도 안될 말을 하는 의원에게는 아무도 '해이' 상태를 발견하지 않는 것인지.
관련 문건을 한번이라도 정독했다면, 스스로 말했듯 과거 군 수뇌부였으면 더 잘 보일 문제점을 지적하지는 않고서는 저런 어처구니없는 모욕적 일갈로 귀한 (나같은 일개 쇤네들은 꿈도 못꿀) 발언 시간을, 쉬이 날려도 괜찮다는 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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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중한 발언권 같은 것이야 당최 날릴 것이 없고 생활 공포에 지친 이 쇤네는
옥상에서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옵니다.


내장탕과 선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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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과 비평.

이 둘이 부적절한 동시에 매우 매끈한 이음매를 자랑하면서 글 한편 안에 야무지게 동거중이시라면, 비평문도 성인 야동사이트의 무차별 팝업창 폭격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과격함을 자랑하는 광고글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 과격한가 하면, 글 잘쓰는 사람이 작정하고 쓴 광고글은 이게 광고인지 일말의 비평적 기준을 지키는 글인지 뭔지 고개를 갸웃갸웃하다 '전문가' 후광에 홀랑 넘어가게 만든다는 것. 트로이의 목마 광고버전이랄까.

어찌되었건 책도 팔려야 살아남는지라 어차피 평할 거, 칭찬이 과해지는 게 무슨 그리 큰 잘못이 되겠냐마는.
칭찬을 구성하는 단어의 인플레이션은 종종 뜨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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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맥락에서 뻔해지는 무엇무엇들에 대해 종종 낄낄대기도 하였던 것이다.

속눈썹, 잘 다린 물빛 와이셔츠, 가녀린 어깨 나오면 섬세하고 트렌디한 필치고
주인공 하는 말이 비몽사몽이다 싶으면 자동기술법이고
밤에 나무 밑에서 목소리가 날카로운 할머니를 만나면 환상문학이고
작품 처음부터 끝까지 진흙밭에 구르다가 마지막에 "그래도 살자" 정도 넣으면 무한한 자기긍정,
내장 나오고 피 좀 튀기면 그로테스크.

기타등등 기타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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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읽었더니 비평 아닌 광고글에 가까웠을 때, 나는 항의할 여력도 없이 입만 한대나 나오고 그저 뾰로통해지고 만다.
그리곤 아무 글에서나 등장인물 둘이 갑자기 맥락도 없이 내장탕과 선지국을 와구와구 먹는 장면을 넣자, 하고 목에 여드름난 사춘기 청소년 처럼 삐딱선이나 탈 결심을 잠시. 이래봤자 쓴 놈만 홀로 겨우 낄낄거릴 쓸쓸한 패러디인 것이니. 아 쓸쓸하다 오 가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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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먹고 이렇게 또 악취미만 느는구나.
꼴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