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30일 화요일

횡단보도 앞 노점상_2009. 6. 30.


 


오이, 참외, 토마토에 쓰여진 표시는 대개 가격표가 그렇듯 위압적이다.


오이 한무더기는 좌우지간 2000원이니까 없으면 꺼져,식이랄까.


그에 반해 "우산/은 3000원/이에요"의 서술형 가격표시는


여지껏 채소팔다가 갑자기 우산팔아서 죄송합니다,하는냥 저자세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할머니는 오이를 들추던 아줌마보다, 여기 우산 다 삼천원이에요? 묻는 학생을 좀더 반겼다,고 생각들던게 단순히 내 오해라면 할말 없다.

애도의 차 한잔

2009년 6월 8일 월요일

뭐 먹고 사느냐 물으니

엄마 가게 일을 도왔는데, 이게 돕는 게 돕는 게 아니다. 다른 직원 아주머니 말로는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지경. 이런 일이라곤 해 본 적 없는 치들이 나방처럼 우,우, 몰려다니니 도움은 커녕 볼썽사납다. 숨어보려해도 몸이나 작나. 헛헛한 웃음만 피식거려도 잃어버린 낯짝은 돌아오기 쉽지 않다.


 


가게에 하등 도움 안되는 것은 엄마 제외 모든 식구 마찬가지. 다들 몸뚱이는 커서 숨지도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어물쩡 비켜 서있다. 아니, 비켜서있다고 착각한다. 직원들에게 걸리적 거리는 것을 보아 어디로 비켜야 잘 비키는 줄도 모른다.


나 이런 일도 못해서 어쩌지, 나 뭐먹고 살아? 하니 엄마 눈이 모로 찢어지며, "이런 일 안하면 되지!"하고 쏘아붙인다. 농담이라고 가는 뒷통수에 대고 얼버무려봐도 엄마는 저으기로 바삐바삐.


 


딱 너같은 딸낳아라, 같은 엄마가 딸에게 하는 저주의 클리셰를 들어본 적은 없으되, 엄마는 나처럼은 살지마라는 말을 저런 식으로 한다. 나는 빨간색 삼선슬리퍼를 신고 뒷골목으로 나가서 시멘트 부을 때 나눠놓아 생긴 바닥의 실선을 따라 고무줄 없이 고무줄을 뛰었다. 숨지도 앉지도 서지도 비켜나지도 못하고 어물쩡 있던 작은 언니가 나와 같이 고무줄을 뛰었고, 곧 큰언니도 나와선 딱따구리구리마요네즈를 뛰었다. 엄마의 모로 찢어지는 눈은 딱따구리가 물고 날아가주면 좋다.


 


 

2009년 6월 4일 목요일

슈퍼마켓_2009. 6. 4.

진짜 과즙이 듬뿍 들어갔다는 딸기우유는 딸기 함유량이 1.6%인 것으로 보아, 이전 딸기우유들은 딸기를 1나노그램 넣은 것으로 알고 '비교적 향상되었음'에 감사해야할 것인지, 내가 모르는 사이 '듬뿍'이라는 부사의 뜻이 바뀐 것인지를 고민케 하였고,
죠스바는 '발렌시아 오렌지'라는 새로운 맛을 출시하였는데, 당최 그 발렌시아 오렌지라는 의문의 과일은 발만 담갔다가 사라졌으니.
과일의 흔적을 쫓느니 그냥 과육을 사자하여, 포도를 한 봉지 들었는데, 아주머니는 그램을 달아보지도 않고 두 근이 넘네, 하며 5900원을 판결한다. 비루한 손저울이나마 아무리봐도 두근은 안되어보여, 이게 두 근이 넘어요?라고 묻지만, 재심은 허하지 않는다. 꽝꽝꽝.

2009년 6월 1일 월요일

귀가길_2009. 6. 1.

버스 안.

남자가 무슨 말을 하자 여자는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입술아래로 이빨이 끝부터 스물스물 기어나오더니 붉은 잇몸까지 드러난다.
이빨은 꽤 가까이서만 볼 수 신체부위라 이빨을 보고나면 뭔가 그사람과 아는 사이 같은 착각이 든다.
토토로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씩 웃을 때, 나는 그 미소의 호의적인 느낌보다 빼곡하게 자리잡은 건치때문에 무장해제되곤 했다.

그렇다면 망했군

여기 내가 있는가, 내가 보이는 걸까, 저 사람은 나를 스쳐지나간 것도 모르겠지.

길을 걸으며 내가 안보인다는 생각을 한다. 대여섯 살부터는 줄곧 버릇처럼 해왔다.
극적으로 우울함을 연출하던 십대 중반에는 이 생각을 전면배치하기까지.
그래서 처음 도둑질을 계획한다; 슈퍼에서 물건을 그냥 가지고 나와보자, 잡히면 내가 보이는 거겠지.

내가 가지고 나오려던건 칫솔이었다. 칫솔도 없이 살 형편은 아니었다. 정말 있어보이는 칫솔, 그러니까 앞머리에 형형색색의 이를 특별히 잘 쑤셔줄 것 같은 특수모가 배치되고 잇몸이 피안나도록 모질이 부드럽고 손잡이는 안미끌어지는 탄성좋은 재질로 된 뭐 그런 칫솔도 아닌 싸구려 칫솔이었던 걸 보면,
칫솔 자체가 내 물욕을 자극한 것은 아니었다.

내 어깨를 잡아채서 "계산 안했지"라던 마트직원은 내게 반성문을 쓰게 했다.
잘못했습니다, 난 내가 보이는지 알고싶었어요,
이 두 문장에서 뒷 문장은 영 안먹힐 것 같아서(핵심은 바로 거기 있는데도!) 뒤는 안쓰고 앞만 한 백몇 번 쓰고 풀려났다. 기껏 쓴 반성문은 본체만체하고 직원은 내 이름이 자기 애인하고 비슷하다며 부모님한테 연락않고 한번만 봐주겠다고 했다. 와, 낭만적이다. 같은 것도 아니고 비슷해서라니. 살면서 이름 덕 본 건 그때가 처음이다.
잘못했습니다 반성문 백 번 써봤자 비슷한 이름 앞에선 별수없네.

쿠엔틴 타란티노는 어린시절, 마트에서 레너드의 소설을 계산않고 나가다가 감방신세를 졌다고 한다.
나는 왜 '있어보이게' 소설을 가지고 나오지 않고 고작 칫솔이었나.
내가 보이는지 안보이는지 굳이 칫솔 아니고 책, CD, 명화도록 등등, 그러니까 나중에 그게 책을 너무 읽고싶어서, 음악이 너무 좋아서, 좋은 그림을 보고서 매혹당한, 장차 큰 예술가가 될 사람의 철없던 시절의 일화 따위로 아름답게 오해될 수 있는 물품이 아니고 왜 칫솔이냔 말이다.

어린 시절, -이런 말이 성립이란게 된다면-악의없는 도둑질을 할 때,
그 품목이 무엇이었나가 미래를 결정하는 걸까, 하고 영양가도 없는 생각을 문득.
그렇다면 난 망했군.
치과의사, 치위생사 참 할 것도 많건만 나는 이빨 교정만 당해봤다. 칫솔로 운동화나 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