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30일 토요일

[고양이의 이면] #2


- 비열한 얼굴

- 귀와 팔에 크레파스 똥이 묻었다. 모나미볼펜에 견줄만큼 배변량이 굉장하다.

2010년 10월 29일 금요일

[고양이의 이면] #1




이면지 + 사은품 크레파스.
동거묘 무아.

포스트 통곡물 시리얼 박스에 크레파스 사은품이 붙어있어 그려보았다.
괜한 사은품으로 시리얼 가격을 높여놓았을까봐 걱정이 되었으나
괜한 걱정일 만큼 크레파스 품질이 형편없었다.
발색이 아주 더러워서 마음에 들기도 한다.

박제가 되어버린 파리를 아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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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도서관에 신청해서 본 책.
행간에 파리가 죽어있는데 가만히 보니 시체가 아니었다.
아글쎄 인쇄된 파리의 주검이라지.
리을에 거꾸러 붙은 자세로 짜부러져 몇부에나 찍혀나갈까.

파리야, 행간의 감옥에서 도망가라, 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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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간의 감옥에 갇혀보자, 하고 시작하지 않았음에도 매번 그렇다. 실패를 기록하는 실패 자체로서의 글.
다만 짜부러지기 전에 퍼덕거릴 따름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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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의식을 못떨치는 거야 쿨하지 못해 미안하면 그만이련만
실제로 부채가 쌓이면 똥구녕에다 불을 놓는 생활이 된다. 항문을 통한 화형을 맞이하며 에헤라디야 부채춤이나 추는 거다.

그러나 말만 이렇게 하고 간밤엔 머리가 숭덩숭덩 빠져서 정수리에 주먹만한 땜빵이 생기는 꿈이나 꿨다.
프로이트도 융도 다 필요없이 이럴땐 운세사이트의 두루뭉술한 해몽이 아주 적격이다.
나쁜 말이면 안 믿자고 보지만 결국 남는 건 흉몽의 그림자라니, 오호 통재라.


행간과 부채의 감옥에서 함께 탈출하자구나, 파리여.


2010년 10월 20일 수요일

모기잡기의 부수적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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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이 시려울 정도로 차가워진 공기에 모기가 유유히 날아다닌다는 것은 이제 이상하지도 않은 일이지만, 양말을 껴신으며 모기를 잡아야하는 데엔 확실히 억울한 구석이 있다. 양말을 신는 순간 돌진한 모기를 향해 손을 휘둘렀고 손끝에 모기가 부딪히는 느낌이 들었다. 손끝에 전해지는 모기의 속도감. 어쩌면 의외의 무게감.
모기가 피를 빠는 대신 떼를 지어 저렇게 인간에게 몸을 부딪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모기가 떼를 지어 피를 빨았을 때만큼, 부딪는 모기에도 나는 창백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어쨌거나 모기는 충돌감만 남기고 어딘가 어둠 속에 숨어 나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물론, 수면양말을 신어야 할 때까지도 모기가 도처에서 돌진한다면 이런 감상따위 개나 주고 나는 그저 심성이 고약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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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생각을 하자면 자연히 우울이나 무기력이나 초조와 불안이 고개를 쳐들고 마침내 나는 쳐울고 마는 일이 요근래 빈번하였다. 고약한 자기연민일 수도 있었고, 감정소모일 수도 있었고, 어쨌거나 그 우울에 푹 잠겨 바닥짚고 헤엄치면서라도 앞으로 가면 그만이다 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제 처지를 야생초 삼아, 참고참고또참지울긴왜울어로, 캔디를 쭉쭉 빨게 두고 싶지는 않다. 그냥, 울만큼 소모할만큼 버릴만큼, 그만큼 충분히 하지 않았나 싶다. 요는, 쳐우는 제자신이 지겹다는 말이다.

어떤 날은 울다가 지나가는 모기를 잡았는데 눈물이 자연히 그쳤더랬다.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서는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육체인 모기를 볼 수도 없거니와 그의 종적에 집중하자면 눈물은 마른다. 그렇다. 적어도 모기만 잡아도 눈물은 그칠 수 있다. 쪼그려앉아 울자, 하지를 말고 뭐라도 하면 그렇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