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는 들어와선, 시계를 흘끗 보곤, 내가 회의 중에 나왔거든, 한 30분만 더 있음 되겠는데, 그동안 "극도의 가난"에 대해 원고지 1000자 정도로 글을 지어보게들, 하며 인쇄된 원고지를 훌훌 나눠주고 나간다.
학생들은 갑자기 쥐어든 갱지 원고지가 잠시 싫기도 하나, 금세 자기 글에 도취되어 써간다. 잠시 후 들어온 교수는 원고지를 거둬들여 잠자코 훑어보다 몇몇 문장을 읽기 시작한다.
대개 "극도의 가난"은 다음의 요소로 표현되고 있었다 ; 아기가 배고파서 울거나, 아기가 자기 똥 위에 앉아 방치돼 울거나, 아기가 병을 앓아 울거나, 아기가 울거나.
뭔 애는 그렇게 밤낮 없이 울어쌌는지 모르겠으나 으레 가난한 집엔 아기가 운다. 애석하게도 내 글에서도 아기는 울고 있었다. 이쯤에서, 아기 울음 소리를 전면 배치했는가, 정조를 위해 후방배치정도로 두었는가가 그나마 학생들의 차이벌리기로 작용할 따름. 어쨌거나 온 학생의 글에 아기는 짹짹 울어대고 있었건만, 모두의 글에서 아기가 울고 있음을 발견하기 전까지, 다들 적게든 많게든 자기 글의 독창성에 뿌듯해서 읽고 또 읽었다.
지인 A양은 아현동 웨딩샵 길에서 자신의 소설의 앞머리를 발견했던 이야기를 씁쓸하게 들려준다. 홍대에서 이대로 가는 길목엔 웨딩드레스를 빌려도 주고 팔기도 하는 가게들이 즐비한데, 연달아 선 가게들 끝엔 좁고 새카만 문을 하나같이 닮은, 물보라니, 밤안개니, 포옹이니 하는 이름의 유흥주점들이 있어, 여자에게 주어지는 요조숙녀 혹은 양공주의 이미지 대비가 강렬하다는 것이며, 거기에서 뒤웅박팔자를 타고난 여자의 이야기가 퍽 흥미롭게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A양의 머리에 스쳤다는 것이다. A양은 잠시 번뜩이는 전율도 느꼈고, 손에 땀도 났으며 미친듯 메모도 휘갈겼다. 그러던 며칠 후, A양이 속한 소설창작 모임 구성원 중 4명이 아현동 웨딩샵 길에서 전율을 느끼며 메모를 휘갈겼고, 그 중 2명은 소설의 앞머리를 몇 장 써보다 구겨 버렸으며, 1명은 아직도 한글 프로그램의 커서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쓰는 중임을 알았다. A양은 헛헛하게 웃으며 메모를 감췄다.
전형성과 유형성에는 이 외로운 생활에, 오냐 너도 알고 나도 아는구나, 조금 덜 외로운 것도 같구나, 하는 공감의 여지가 있어, 위안이자 축복이 된다. 그러나 가난한 집에서 일제히 아기가 울 때에는 이 위안과 축복이 저주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