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31일 월요일

버스, 부엉새_2009. 8. 31.

부엉, 부엉새가 우는 밤, 부엉 춥다고서 우는데, 열두 시가 되면은 문을 닫는다.


 


-_-


오늘은 종일 노래가 요따구로.


 


부엉이가 춥다고 춥다고 우는데, 다들 열두 시라며 문을 닫는다는 각박한 현장을 포착한 기분.
추운 부엉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냐, 문을 닫아야만 사람은 간밤에 신종플루를 안걸리고 면할 수 있느냐, 부엉이는 부엉이고 살 사람은 따뜻하게 살아야지,를 생각하다, 이게 무슨 얼간이 같은 생각이람,하다간, 감사합니다,하고 추가요금 200원을 찍고 버스에서 내린다. 몇주씩 고민하다 산 중고 신발 끝을 쳐다보다가 꽤 마음에 들어, 춥다고 우는 부엉이도 열두 시에 닫히는 각박한 문도 잊어버린다. 과년한 얼간이.

2009년 8월 29일 토요일

이른 아침의 귀가길_2009. 8. 28.

 


첫차가 다니기 시작하고서도 한 시간은 넘은 시각. 성마르게 동이 터오자, 무거운 궁둥이를 떼고 자리를 뜨지 못한 밤의 흔적들이 몰려오는 아침의 사람들에게 치부를 보인다.


 


밤의 복장을 아침에 마주하면 어째 조금 남세스럽다.


똑같이 흐트러진 것 같아도, 아침의 분주함이 뭍어난 옷자락과 밤의 여흥에 뒤틀린 옷깃은 전혀 다르니. 벌컥 열어버린 문에 아직 옷매무새를 채 다듬지 못하고 대강 여미기만 한 채 외도의 장면을 들켜버린 에로영화의 장면처럼, 햇빛은 자꾸자꾸 밝아오는데 밤의 흔적은 (무슨 잘못도 아니건만) 폭로되고 있다.



준비가 되지 못한 밤의 사람들은 무거운 엉덩이를 주춤주춤 옮기며 아침의 사람들 사이로 섞인다.
아침 사람들은 밤의 흔적들을 달갑게 여기진 않는듯. 그들의 찌뿌린 미간은 내뱉지 못한 잔소리같다.


 


아침의 복장은, 한나절만 지나 밤이 다시 온다면, 아직 긴장을 풀지 못한 회식자리의 초임교사처럼, 샌님같이 보일 시간이 온다. 밤사람이 늦은 잠을 청한 후 한나절이면 된다. 그 시간이 오기 전까지 옷깃을 마저 여밀고 아직 밤을 이어가고 있는 밤사람의 방으로 각자각자 줄행랑을.

2009년 8월 27일 목요일

호떡, 떡볶이, 포장마차_2009. 8. 27.

늙수구레한 남자가 퍼런 가스불 앞에 땀을 쩔쩔 흘리며 모로 앉아있다. 피곤하고 궁색한 입맛다심.


포장마차는 사내와 같이 바래지고 늙었고, 음식도 마르고 윤기가 없다. 원, 저래선 누가 사먹누.


 



그때 여지껏 아래 박스에서 짐을 뒤적거리느라 가판 위로 보이지 않던, 아주머니가 일어난다. 곱게 단장한 아주머니가 진열대 위로 떠오르자, 포장마차가 생기로 넘친다. 음식도 반들거리고, 사내는 더이상 피곤하고 궁색해보이지 않는다. 포장마차 덮개의 켜켜이 앉은 먼지는 저 길목을 견뎌낸 시간의 상징으로. 떡볶이 1인분 사가볼까.


 



아주머니가 고개를 들고 나타난 순간 사내가 호떡-떡볶이-포장마차와 묶여있던 표상의 끈들이 모조리 재배치된다. 여자는 꽃이다,라는 말이 아무리 페미니스트에게 원투펀치를 맞는다해도, 저 포장마차의 여자는 분명 찬란한 꽃이다.

2009년 8월 12일 수요일

가난한 집엔 아기가 운다

교수는 들어와선, 시계를 흘끗 보곤, 내가 회의 중에 나왔거든, 한 30분만 더 있음 되겠는데, 그동안 "극도의 가난"에 대해 원고지 1000자 정도로 글을 지어보게들, 하며 인쇄된 원고지를 훌훌 나눠주고 나간다.

학생들은 갑자기 쥐어든 갱지 원고지가 잠시 싫기도 하나, 금세 자기 글에 도취되어 써간다. 잠시 후 들어온 교수는 원고지를 거둬들여 잠자코 훑어보다 몇몇 문장을 읽기 시작한다.

대개 "극도의 가난"은 다음의 요소로 표현되고 있었다 ; 아기가 배고파서 울거나, 아기가 자기 똥 위에 앉아 방치돼 울거나, 아기가 병을 앓아 울거나, 아기가 울거나.

뭔 애는 그렇게 밤낮 없이 울어쌌는지 모르겠으나 으레 가난한 집엔 아기가 운다. 애석하게도 내 글에서도 아기는 울고 있었다. 이쯤에서, 아기 울음 소리를 전면 배치했는가, 정조를 위해 후방배치정도로 두었는가가 그나마 학생들의 차이벌리기로 작용할 따름. 어쨌거나 온 학생의 글에 아기는 짹짹 울어대고 있었건만, 모두의 글에서 아기가 울고 있음을 발견하기 전까지, 다들 적게든 많게든 자기 글의 독창성에 뿌듯해서 읽고 또 읽었다.

지인 A양은 아현동 웨딩샵 길에서 자신의 소설의 앞머리를 발견했던 이야기를 씁쓸하게 들려준다. 홍대에서 이대로 가는 길목엔 웨딩드레스를 빌려도 주고 팔기도 하는 가게들이 즐비한데, 연달아 선 가게들 끝엔 좁고 새카만 문을 하나같이 닮은, 물보라니, 밤안개니, 포옹이니 하는 이름의 유흥주점들이 있어, 여자에게 주어지는 요조숙녀 혹은 양공주의 이미지 대비가 강렬하다는 것이며, 거기에서 뒤웅박팔자를 타고난 여자의 이야기가 퍽 흥미롭게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A양의 머리에 스쳤다는 것이다. A양은 잠시 번뜩이는 전율도 느꼈고, 손에 땀도 났으며 미친듯 메모도 휘갈겼다. 그러던 며칠 후, A양이 속한 소설창작 모임 구성원 중 4명이 아현동 웨딩샵 길에서 전율을 느끼며 메모를 휘갈겼고, 그 중 2명은 소설의 앞머리를 몇 장 써보다 구겨 버렸으며, 1명은 아직도 한글 프로그램의 커서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쓰는 중임을 알았다. A양은 헛헛하게 웃으며 메모를 감췄다.

전형성과 유형성에는 이 외로운 생활에, 오냐 너도 알고 나도 아는구나, 조금 덜 외로운 것도 같구나, 하는 공감의 여지가 있어, 위안이자 축복이 된다. 그러나 가난한 집에서 일제히 아기가 울 때에는 이 위안과 축복이 저주가 된다.

2009년 8월 6일 목요일

신도림역 부근_2009. 8. 5.

사람들이 아주 빽빽하게 오가는 곳이 아니고서는, 대개 팔벌려공간 정도는 앞뒤로 확보해주는 것이 보행자들 간의 암묵적 약속이다. 뒤따르는 놈은 앞서가는 놈의 발뒤꿈치를 밟을 정도로 가까이 따라가지 않으며 옆사람 팔에 닿을 만치 붙지 않는다.


 


이 '보행자 반경'의 투명선을 성큼, 넘어서는 사람들이 있다. 취객과 '도를 아십니까'.


취객은 보행자 반경을 지킬만큼 여유가 있어보이지 않으며 (그는 달겨드는 땅과 벽을 피하기에도 바쁘다), 그러니 '술이 웬수'라고 읊조려주면 서로의 정신건강에 좋다.


 


요즘 후자, 그러니까 '도를 아십니까' 류의 사람들의 공격성이 유난히 강해졌다. 그 접근 전술이 다채로운 것은 진즉에 알고 있다. 기가 맑다 하다가 팔뚝을 잡거나, 길을 묻다가 팔뚝을 잡거나, 짐 좀 잠깐 들어달라다가 팔뚝을 잡거나, 심리테스트 중이라며 검사지를 내밀다 팔뚝을 잡거나, 팔뚝을 잡거나.


그런데 오늘은 유난 육탄전이다. 치한 선발 기준에도 손색 없을 만치 바짝 몸을 붙이는 것은 물론이요, 잰 걸음으로 지나치는 사람 손목을 홱 채여 붙들고, '내귀에이어폰이보인다면내가반귀머거리인건알겠지요' 재스쳐도 간단 무시.


내 앞을 걷던 여자는 다른 생각을 하며 걷다 갑자기 붙들렸는지 놀라 비명을 꽥 질렀다. 어머 많이 놀라셨어요, 하며 놀람과 공포와 짜증으로 버무려진 여자 얼굴에 대고 하하 웃는다. 원 저 사람, 붙임성하곤.


 


여자를 놓아 주고 뒤에 오던 내게 잽싸게 다가온다. 나는 두 팔로 크게 손사래치며 지친 표정으로 "됐어요"라고 말해보아도 끝내 손목은 한번 붙들고 놓는다. (<프리그립운동>인가?)


 


이들의 육탄전에는 애석하게도 별 대응법이 없다. 걸어오는 말을 진지하게 듣고 따라가서 냉수마찰 후 조상님께 제사를 20만원에 올리고 와도, 맞서서 이런 짓이 얼마나 공격적인지에 대한 설교를 늘어 놓아도, 이기는 축은 못된다. 그저 무시하고 돌아서는 게 상책이다 싶어도, 놀라고 불쾌하고 피곤한, 감정적 부산물을 처리하는 것은 내 몫이니, 역시 지는 꼴. 반드시 이기자고 하는 소리도 아니건만, 늘 지니까 이거 슬슬 배알이 꼴린다.

오늘도 끄적거리네

핸드폰 메모기능을 쓰는 것보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수첩과 펜을 꺼내 한쪽 다리가 저린 사람마냥 다리로 받침을 올렸다 놨다 하며 끄적대기가 익숙하다. 익숙하다는 게 좋다거나 편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꽤 수고스러울 뿐더러, 나중에 보곤, 뭐 이런 걸 가는 길 멈추고 깽깽이를 뛰어가며 썼단 말인가 싶은 게 팔할이다.


 


없는 살림살이엔 아껴아껴 써야한다. 나는 파인만처럼 아이디어가 장마철 둑 터진 중랑천모양 흘러 넘칠 때가 거의 없으므로, 일년삼백육십날이 가뭄인 실개천처럼 쪼로록 두어 방울, 그마저도 햇빛 한번 쨍 해버리면 고여 흐른 흔적도 간수 못할 아이디어 빈곤층이라, 떠오르는 무엇이든 되도록 담아둔다. 물 관리가 그모양이니 수질이 좋지 않다.


 


종종 하우스의 다그침을 생각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생각을 내놓을 때는 이것이 잉여정보인지 아닌지를 판단하지 않는 편이 결정적 키워드가 될 것이라는, 빈곤층 다운 믿음을 지켜보는 것이다. (생각에는 우열이 없다. 생각의 민주주의를 허하라. 생각이 서로서로 말하게 하라) 수년 간 모인, 형편없는 메모가 적힌 수첩들을 곁눈질한다. 마치 출간된 내 책을 보는마냥 슬쩍 웃어도 본다. 쿤데라는 사람들이 '내 집' 혹은 '우리 마을' 등을 말할 때와는 달리 '내 책 mon livre'을 말할 때, 리-브흐의 앞을 자기 만족에 가득한 한옥타브 높고 긴 발성을 한다는 점을 키득댄다. 이 이방인 노인네는 수년 간 프랑스인들의 '리-브흐'를 빙글빙글 웃으며 들었을 것이다. 수첩을 향한 내 곁눈질도 (우습지만) 반 옥타브 에스컬레이트 된다. 심지어 미지의 독자를 향한 남서광의 자부심도 결여되어 있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