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1일 금요일

순발력 결핍자


대학에 가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내가 특별히 수강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체육시간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애물 달리기 따위는 언제나 나를 위축시켰다. 뛰기나 넘기, 둘 중 하나만 시켜도 심란한데, 뛰다가 갑작스레 나타나는 장애물(아무리 쳐다보며 뛰어도 장애물은 늘 급작스레 나타난다)을 뛰어넘을 도약점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신비에 가깝다.


어떤 종류의 순발력은 체육시간이 아니더라도 나를 좌절시킨다. 가령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을 건널 때, 좌우를 확인했음에도 갑자기 차가 돌진하면 나는 매우 재빠르게 그냥 몸이 굳는다. 쇤네, 몸값도 헐값입니다, 치고 가시오. 공이 날아 올 때 눈을 감는 속도에 버금가게 그저 길 한복판에 멈춰서는데, 이건 개체수가 급격히 줄고있는 멍청한 초식동물같다. 위험 앞에서 피하기보다 몸이 굳는 편이 속도가 빠르다니 세포 하나하나까지 게으른 느낌.


그러니 년도 끝수가 9일 적마다 잘 나오는 재난영화에 늘상 등장하는 민폐형 캐릭터가 될 것이 분명하다. 뒤에 파도가 들이닥치는데 전선 따위에 걸려넘어져 "먼저가" 같은 도움안되는 말만 하는 인물. 그래서 생각건대 나는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서 갑판으로 앞사람을 밀치며 달려가는 사람이느니 우리 마지막 연주를 합세, 하며 차오르는 물을 보며 바이올린을 켜는 악사이길 바라는 것이다. 이건 품위를 지키는 것으로 포장한 순발력 결핍자의 꼼수이다.



댓글 7개:

  1. 부족한 능력보단 완전한 결핍 쪽이 탓하기는 쉽더군요.

    품위를 지킬 꼼수로나마 결핍을 위로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저 못지않게 인생이란 슬랩스틱 재난영화는 별로 자비로운 편이 못되는 듯 해서 끄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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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저런 경우는 매우 위험스러운데요......

    우리 공주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합니다.

    한국에 있는 동안 새끼 고양이를 데려다 놨는데 사람에게 얼마나 들러붙으면서 깨물어 대는데 그것이 무서운 공주, 고양이를 피해 식탁과 의자를 뛰어 넘어 도망갑니다.

    아마도 우리 공주는 순발력이 만점짜리인가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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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Mikolev - 2010/01/02 14:29
    자비를 바라느니 꼼수로 선수를 ㅎㅎ

    여지껏 큰 사고없이 살아 온 것은 아직 제 인생이 슬랩스틱은 되어도 재난영화까지는 진입안해준 덕은 아닐까도 생각 ^^

    연초는 운 강조주간이니까요 (뭔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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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사가아빠 - 2010/01/03 10:16
    으아, 고양이를 피해 장애물 코스를 간단 클리어하는 공주님.

    물면서도 치근대는게 고양이 매력이지만서도,

    새끼여도 자주 물면 아프더라고요 ㅎㅎ

    달려라, 공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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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글 표현력이 뛰어나십니다.

    비결이 궁금합니다. 정말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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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Lifelog - 2010/01/15 01:14
    표현력 좋으신 분이야 차고 넘치게 많습니다.

    재수없는 겸손떨기가 아니라, 정말로 비결따위 갖고 있을, 저 그런사람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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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쟝자끄 - 2010/01/20 16:40
    그럼 표현력의 수준보다 제가 좋아하는 타입의

    글인 것 같습니다.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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