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광주로 향했다. '호상'이라는 것. 늙어 병들어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고, 적당히 많은 세월을 겪어내다 돌아가는 것. 옆 분향소에 화재로 죽은 부부가 있었고, 때문에 더 호상이다 싶었겠으나, '호상'이라는 말은 자식들 입에서 나오건 지나가는 입에서 나오건, 섭섭할만큼 냉정한 구석도 있다. 그럼에도,
한참을 흐느끼다가도 오며가며 하는 농담에, 온 일가가 모인 자리에선 응당 쏟아져 나오는 자식자랑들에, 와르르 웃다가도, 또 끼니에 밥 한 술 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사람들은 감정의 이 끝과 저 끝을 비틀비틀 흔들리며 시간을 견뎌내고 있었다. 이 끝은 응당 당연하고, 저끝도 비틀거리나마 파도처럼 오갈 수 있는 것은 '호상'이어서겠지. 아니, 그럼에도.
장례식장은 온전한 무력함을 느끼는 공간이다. 망자와 가족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 끝과 저 끝을 비척대며 애도의 과정을 찬찬히 걸어가는 것만을 한다면 할 수 있다. 엄마의 삼베매듭이 꽂힌 푸석하게 흩어진 머릿무새가 마음을 찔러, 바쁘게 일손만 도왔다. 상여소리를 들으며 장지로 향하던 길엔 노자돈을 실랑이하느라 멈춰서는 중마다 쏟아지는 햇빛아래 원숭이처럼 주르륵 붙어서서 앞 사람의 검은 상복 위에 붙은 먼지만 살살 떼어주곤 했다. 문객에게 대접하던 육개장 국물이 튄 자국은 손톱을 세워 긁어도 가루만 날리고 얼룩은 가시지도 않았다. 봉긋하게 솟은 봉분을 보던 그 때, 땀에 절은 상복이 등판에 달라붙어 있던 느낌을 따로 새겨둔다.
아아..
답글삭제외할아버지.....
답글삭제희미하게나마 남아있는 기억은 외할아버지 무릎에 앉았던것(정말로 딱 그 한장면만 기억속에 남아있는것) 그리고 훨씬 뒤에 안 일이지만 시골의 축제같았던 그날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신날 이었다는것.....
그날이 축제같았다고 기억되는 것은 외할아버지도 '호상'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죽음'이라는걸 모르는 너무 어린 철부지였기 때문이었을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