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5일 금요일

오한과 발열 사이



- 몇몇 장면들은 신경을 에누리없이 곤두세워 안면없는 사람에게라도 일갈하고 싶어지게 한다. 가령, 버스에서 어린 애가 대강 앉아있는 걸 나몰라라 하고 딴 곳에 앉아있는 부모라든지, 횡단보도 앞에서 애들이 까불까불 몸을 흔들어대는데 잡고 있을 생각도 안하는 부모라든지.

애들은 대강 앉는 게 어떤 건지 확실히 보여주므로 한순간만 눈을 돌려도 손잡이에 머리를 꽝 박고, 등받이에 머리를 꽝 박고, 기둥에 머리를 꽝 박고, 바닥에 내던져져 구르다가 머리를 꽝 박을 수 있다. 하필 내 옆에 앉은 애가 대강 앉아 있었고, 부모가 나몰라라 건너편에 앉아 신경도 안썼고, 나는 일갈의 욕구를 이를 덕덕 가는 데에나 쓰다가, 급정차 한방이면 애가 바닥에 나뒹굴다 머리를 꽝 박을 영상이 가시질 않아 내 자리로 애 엄마를 앉게 했다. 자리를 옮겨 앉다가 애 대신 내가 의자 손잡이에 착석해 버렸는데, 그때 이후로 허벅지 뒷쪽에 주먹만한 보라색 피멍이 여직이다. 그래서 여직 이도 덕덕 갈고 있다.


- 불안이 고질병으로 번질 때면, 미래의 온갖 '최악의 시나리오'를 작성한다. 사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온 하루를 치욕 사건이 점철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모든 선택들이 나를 배반하여 완전히 궁지에 몰리는 미래의 어떤 날을 그려보고 널부러진 마흔 쯤의 나를 보며 한숨을 폭폭 쉰다. 나는 이런 능력은 좀 있다. 과연 쓸데는 없는 능력이다.


- 말 한마디로 불안이 증폭되게 했다는 사유로 남친에게 딱밤을 약 5대 때렸다. 오, 누가 처음부터 뺨을 치려 했겠는가, 시작은 누구나 이렇게 (귀여운) 딱밤정도인 것이다. 나는 더욱 폭력적으로 변질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나 이런 능력 있다고 이미 말했다)


- 그저 '지금'을 살라는 말은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아서 늘상 정수리 위엔 미래의 숱한 마이너리티 리포트들이 너울너울하다. 나는 하냥 오한과 발열 사이를 오가며 불안해한다. 모골이 송연해졌다간 열이 풀풀 났다간.


- 근데 넌 대체 뭘 할려고 이지랄이여, 이지랄이.




댓글 2개:

  1. 배려의 대가 치고는 값이 너무 후한것 같습니다.

    샛길에서 진입하는 오직 한대에게만 양보를 했는데 줄줄이 사탕으로 밀고 들어오고 뒤에서는 양보했다고 신경질적인 빵빵거림은 내가 괜한짓 했나?



    감기라면 빨리 나으시길.......^^

    답글삭제
  2. @사가아빠 - 2010/03/06 02:42
    배려라기엔... (긁적)

    애가 바닥에 구르고 머리를 꽝 박는 영상을 멈출 방법이 그것뿐이라서요 ^^



    감기는 가볍에 스쳤습니다만, 오한 발열은 불안을 꽃피우는 영상들 때문입니다.

    이것도 낫는 거라면 빨리 나았으면 좋겠습니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