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19일 월요일

의도의 미끄럼틀

-
고양이 밥그릇 밑에 깔끔한 식탁매트를 깔아주었더니 먹이를 물어다 매트 옆 맨땅에 내려놓고 먹는다.
더운 여름 나기에 녀석이 힘들까하여 언니가 마련해준 쿨매트는 본척만척하곤, 신발장 앞 타일바닥에 연히 등을 부비부비 중이다. 진땀 흘려 목욕시켜놓으면 꼭 드러운 데만 찾아 누워있는다.


-
봉지를 잘못 뜯어 가루가 된 쿠쿠다스를 입에 털어넣을 때, 개발자는 깔끔하게 튿어지라고 몇날며칠 밤을 새 고심해 장착했을 포장봉투 속 붉은 개봉선이 보인다. 여기로 뜯으면 잘뜯어지걸랑요, 잡고 당기기만 하면 되걸랑요. 쫓아다니며 말해줄 순 없어 답답한 앙금이 가슴팍을 누르거든, 못본 놈은 가루나 털어먹어라!, 하는 체념이 오히려 상처를 완화시켜줄 것이다. 그러니까 식탁매트가 뭐요, 목욕은 했어도 타일 위가 좋소, 하는 고양이 앞에서 그저 잘해야 유연한 체념 뿐인 것.


-
지인이 고교시절 겪은 헤프닝도 그렇다. 관심있던 학교 여학생에게 정문으로 나오면 좋다는 뜻, 후문으로 나오면 싫다는 뜻으로 알겠노라 쪽지를 전하고 자신은 정문에 포진, 친구녀석은 후문에 세워두고 휘파람으로 신호를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에 여학생은 교복 치마 밑에 체육복 바지를 겹쳐입는 혐오패션을 감수하고 담을 넘어 도망쳤다. 누구 마음대로 선택의 고문을 시키는가. '마음을 분명히 알아보고 싶다'는 것도 과한 욕심인 것을.


-
의도가 전해지는 것이 어디 쉽겠는가. 배려와 사전계획이 세심하고 치밀할수록 무시 앞엔 처참하다.
쿨가이 연출과 굳건한 마음의 쉴드가 필요한 시점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